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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평연 자료실

한보철강과 한보사태(IMF 사태의 기폭제)

by 객원ㄱI자 2021. 4. 29.

철강공장
한보 철강

한보철강의 역사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전자는 1957년에 박해원 창업주가 세운 '초석건설'이며 1968년 토목건축업, 1972년 도로 및 전기공사업 허가를 각각 받았고, 1975년 요르단을 시초로 중동 건설사업에도 진출하여 1977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 상장했다. 1979년에 경영난으로 한보그룹에 인수된 후 '한보 종합건설'로 사명을 바꿔 1981년 철강재 설치공사업 면허를 따냈다.


후자는 1980년에 한보그룹 측이 청주 철구공장을 인수해 세운 '한보철강공업'으로, 1984년 (주)금호로부터 철강사업부를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철강업을 개시했는데, 존속 당시 구 한보철강공업이 설립된 1980년을 공식 창립일로 봤다.


1989년에 두 회사를 합쳐 존속법인을 구 한보 종합건설로 한 후, 사명도 아예 '한보철강공업'으로 바꾸고 건설-철강 2개 사업본부 체제로 했다. 1990년에는 철강사업본부 측이 일본 도쿄에 지사를 세우는 한편, 건설사업본부 측은 아산만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개시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당진제철소 공사를 개시하며 1995년에 건설사업본부를 (주)한보로 넘기고, 당진 제강소 1차 공사를 먼저 마무리했다. 이듬해에는 부산제강소도 그 회사에 넘겼으나 1997년에 부도가 나 한보사태로 이어지게 됐으며, 한동안 법정관리를 받은 채 2002년 상장 폐지됐다.


다른 한편 2000년에 네이버스컨소시엄, 2003년 AK캐피털 컨소시엄이 각각 인수 물망에 올랐지만 2004년 INI스틸-현대하이스코 컨소시엄에 당진제철소가 넘어간 후, 본사 건물도 2006년 경매로 넘어가면서 한보철강은 청산절차를 밟다가 2009년에 문을 닫았다.

 

한보사태

뉴스화면
한보의 부도 보도

한보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발생한 추악한 경제범죄 사건으로 정태수 회장이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 등 정계 유력인사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다. 이렇게 해서 생긴 불법대출액은 5조 7000억 원이다.


수서 비리 사건으로 이미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였던 한보그룹은, 정태수 총회장의 욕심에 의해 철강 사업에도 마수를 뻗치게 된다. 그러나 열악한 자금 조달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은행의 차관. 당시 은행들은 철저히 독립된 지금과 다르게 정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은행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손을 잡았어야만 했다. 이에 정태수는 은행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들 위주로 대형 로비를 벌이게 된다.


정태수는 국회 출석 자리에서 1조 원을 빌려 제철소를 짓는다면, 자신이 10조 가치의 공장을 만들어 주겠다며 호언장담했고, 이는 TV에도 그대로 전파를 탔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시간이 지날수록 금액이 불어나 결국 5조 원대의 계획으로까지 번진다. 한보는 정부의 비호 아래에서 결국 대출받은 금액을 가지고 제철소를 만들었지만, 대출을 받음과 동시에 문어발식으로 인수합병 및 세력 확장을 호전적으로 진행해 자금이 들어와도 메꿀 수가 없는 처지에 놓인다.


결국 정태수는 꼬리가 잡혀 1997년 5월 재판을 받고 수감되었고, 실제 감사 결과 차관 5조 7천억 중 2천억 원만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 그의 행적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지어졌던 한보철강 당진제철소는 바로 부도처리되어 포항 종합제철이 위탁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당진제철소와 거래를 놓은 백수십여 개의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다. 당진시(당시 당진군)의 경제는 당연히 불황을 넘어서 붕괴 수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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