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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평연 자료실

농심의 역사와 초대 창업주

by 객원ㄱI자 2021. 2. 8.

농심은 대한민국의 식품업체이자 농심그룹 계열사이다.

농심은 4일 이사회를 열고 다음 달 2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지 않기로 했다. 신 회장의 임기는 다음 달 16일까지다.

농심의 이번 주주총회에는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과 박준 부회장, 이영진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된다.

현재 신동원 부회장과 박준 부회장은 각자 대표이사를 맡으며 농심을 이끌고 있다.

신 회장은 최근까지도 회사 현안을 직접 챙겨왔다.

지난해 농심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국내외 주력 사업이 모두 안정적인 상승 궤도에 오른 것이 퇴임의 결정적인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 국내 라면시장 1위에 오른 농심은 신라면을 내세워 세계 무대에서 ‘K푸드’의 대명사가 됐다.

농심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2.6% 증가한 2조6398억원, 영업이익은 103.4% 증가한 1603억원이었다.

해외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외 주력 사업인 라면 매출 증가가 실적을 견인했다.

미국 제 2공장을 건설 중인 농심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거치며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올해 중남미 등 다른 시장도 적극 개척해 현재 40%대인 해외 매출을 50%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신 회장의 경영 원칙은 '우보만리'로 요약된다. 1965년 롯데라면을 처음 개발한 이후 지금까지 '식품업의 본질은 맛과 품질'이라는 원칙을 지켜왔다.

화려한 광고와 마케팅보다 제품 본질의 품질 경쟁력을 갖춰야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지금의 농심을 만든 장수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고기라면, 너구리, 육개장사발면, 짜파게티, 신라면, 안성탕면 등 라면 제품과 새우깡, 감자깡, 양파링, 꿀꽈배기 등 스낵 제품이 당시 20년 간 출시된 스테디셀러들이다. 신 회장은 사내에서 '작명왕'이라고 불릴 만큼 농심의 모든 제품명을 직접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故)신격호 명예회장의 동생인 신 회장은 일본롯데 이사로 재직하다 형의 만류를 무릅쓰고 롯데공업을 차린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업과 장사를 병행했다. 부산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유통기한이 지난 쌀을 싸게 팔려다 실패도 했다.

그런 경험이 평생 품질 경영을 하게 된 배경이 됐다.

농심을 1등 기업으로 키운 건 투자와 기술 개발이다. 

1965년 첫 라면을 생산한 해에 라면연구소를 세웠다.

서울 대방공장을 모태로 안양공장, 부산 사상공장, 구미공장 등을 첨단 식품 생산기지로 만들었고 해외 중점 국가인 미국, 중국에도 대규모 공장을 지으며 진출했다.

기술이 곧 품질이고 혁신이라고 믿어온 신 회장은 2010년부터 직원들에게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는 또 "라면 업계 지난 50년이 스프 경쟁이었다면 앞으로 50년은 제면 기술이 좌우할 것"이라며 "다른 것은 몰라도 경쟁사와의 연구개발(R&D)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강조했다.

굵은 면발 열풍을 일으킨 짜왕과 맛짬뽕(2015), 신라면의 제 2전성기를 이끈 신라면건면(2019) 등 혁신 제품들은 이 같은 전략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연구원들이 원가를 낮추기 위해 굵은 면에 일부 들어가는 쌀가루를 5년 묵은 통일미를 사용하다가 신 회장으로부터 "품질은 좋은 원재료에서 나온다. 프로젝트를 전면 재검토하라"는 불호령을 듣기도 했다.

라면 외 사업군에서도 식품업의 본질에 투자해 성공을 거둔 사례가 많다.

농심의 제품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트럭 80대 분량의 밀가루로 수천 번 실패하다 제조해 낸 국내 최초의 스낵 새우깡, 국내 최초의 쌀면과 건면 특허 기술, 국내 최초의 짜장라면 등이 수많은 도전 끝에 만들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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